세상에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도 그랬다. 무엇이든 더 잘해주고 싶었고, 방학을 앞두면 아내와 함께 신문 사이에 낀 전단지를 뒤지며 더 좋은 학원을 고르기 바빴다. 언제나 뭔가 모자라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 시험을 앞두고는 모든 저녁 약속을 취소했고, 퇴근 후에는 발소리도 살금살금, 좋아하는 야구 시청도 금지였다.
내가 차차 이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좋은 부모는 자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다음부터이다. 이것은 병원에서 오래 학부모를 만나고,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며 얻은 교훈이다.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모두는 ‘부모’이기에 앞서 한‘사람’으로 존재한다. 아이가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가 지금 이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 인생이 너무 재미있으면 나보다 아이가 더 중요할 수 없고, 자녀에게 지나친 기대를 안 하게 된다.
아이는 부모가 세상을 어떻게 사는지 보고 배운다. 어디서 뭘 하면서 살든 자기 인생을 즐긴다면 아이 또한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최소한“너를 키우느라 내 인생을 희생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은 아이에게 평생 떨치기 힘든 부담감, 즉 불필요한 유산을 남기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육아와 자녀 교육에 몰두하면서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의 성공이 나의 성공은 아닐뿐더러, 완벽한 부모야말로 자식 입장에서는 최악의 재앙이다. 도저히 아빠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과연 무슨 노력을 하겠는가. 결국 자녀에게 가장 좋은 유산을 내가 잘 사는 것이다.
이제 아이의 시험기간이라고 친구와의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대신 기분 좋게 취해, 들어가는 길에 치킨 한 마리를 사 가는 여흥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이가 주눅이 들거나 겁을 내는 일이 있다면 한마디 한다. 아들 기죽지마, 아빠는 너를 위한 응원 단장이란다.
샘터 10월 호- 나를 움직인 한마디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